알래스카 관광명소

"토인들의 문화탐험 "

아이비의 알래스카이야기 2014. 3. 30. 06:23

..

19세기 초반, 영국 포경선이 사고로 침몰해 선원들은 정처없이 떠돌다가 오세아니아
 어느 섬에 도달했는데 섬 사람들이 이들을 보더니만 여럿이 서둘러 나왔고 이걸 보고 
저들은 식인종이니 우릴 잡아먹을 것이다며 그대로 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하지만 배를 타고 주저없이 달아나던 이들은 먹을 게 떨어져서 정작 자신들이 
서로 잡아먹으며 식인종이 되어버렸는데, 
나중에 밝혀진 진실에 의하면 그 섬 사람들은 식인을 하지 않았으며 
이미 18세기에 백인들이 오면서
 기독교 (정확히는 성공회)를 믿고 백인들을 환영하는 편이었다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섬 사람들이 당시 서둘러 나온 것은 이들을 도와주려고 한 것이었는데 
오해하였던 것이랍니다.
오늘은 17세기와 18세기때의 그들의 유산인 문화를 잠시 돌아볼까 합니다.






고대 이집트의 문화재를 소장중인 이집트 민야 지역의 말라위 국립박물관이 
혼란 속에습격당해 「성수」라 불리는 비비 등의 미이라나 채색목관 등 대부분의 
소장품이 도난 당했답니다. 
박물관이 통째로 약탈된 것은 이집트에서도 전례가 없는 피해로,
 내외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일제에 수많은 문화재가 약탈 당했던 가슴 아픈 일이 있었지요.
거기다가 6.25전쟁때에도 엄청난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 해외로 밀반출이
되었답니다.




많은 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밀반출과 약탈에 의한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영국.스페인등의 탐험가 들에 의해 약탈되었습니다.
당시 그 나라에서는 모험가이며, 탐험가로 칭송을 받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면 
약탈자에 지나지 않았음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특히, 콜롬버스 같은 경우에는 그로 인해 사라진 나라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황금을 찾아 배를 타고 원정길에 나선 콜롬버스는 왕과 계약 하기를 일정부분 
약탈한 황금을 분배 받기로 하고, 작은 나라들을 침략하여 수많은 문화재와 황금을 
약탈 하기에 이르렀지요.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제 상당수 부분이 일본 개인소장가나 대학 박물관등에 전시 되어 있지만,
약탈에 대한 증명을 하지 못하면 반환을 하지 않는 국제 규정 때문에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답니다.




지난번 도굴단들이 일본으로 원정을 가서 우리나라 국보급 문화재를 훔쳐서 국내에 반입하여
판매를 하려다가 검거를 당한적이 있는데, 일본측에서는 되돌려 달라고 하고,
한국 절 (원소유자)측에서는 약탈 당한거라고 주장을 하면서 아직 까지도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답니다.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다른 나라의 문화재를 감상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마음 아픈 사연들을 간직한 문화재라 할수 있습니다.




토착 원주민들에게는 이런 문화재들이 그들의 숭고한 신앙과 전통의 뿌리 였을겁니다.
부족들이 살고 있는 곳에 와서 각종 식료품이나 총칼을 주면서, 교환을 했을 원주민들은 
지금에 와서는 애가 타지 않을까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모든 문화재는 당시 소유의 국가에게 반납을 하는 대신 임대 형식으로
박물관에 전시 되어야 하는게 정석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이집트 같은 경우에는 워낙 많은 문화재들이 영국과 미국,프랑스.독일등에게 
약탈을 당했기에 참 가슴 아픈 일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어느 지역을 방문하게 되면 꼭 들르게 되는곳이 바로 박물관과 미술관 입니다.
두군데는 어김없이 들르게 되는데, 그 두군데를 들르게 되면 그 지역의 수준을 어느정도 
알수가 있습니다.

각 도시의 문화예술은 큰 편차를 보이게 되는데 바로 그 이유가 역사와 전통 입니다.
전통이 없는 도시는 현대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인 고갱은  17세부터 6년간 선원 생활을 거쳐 
파리 증권거래소의 직원이 되었는데,
1883년 인상파 화가의 살롱에 출품한 그림이 입상함으로써 35세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고흐와 함께 남프랑스의 아를에서 생활하기도 하였으나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지고, 
1890년 혼자 타히티 섬으로 가서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뜨거운 태양과 아름다운 풍경, 
소박한 토인들의 생활을 원색에 가까운 빛깔로 그렸습니다. 

이 때 [타히티의 여인]이 완성되었으며, 그 밖에 작품으로 [황색의 그리스도] 
[사랑하라, 그러면 행복을 얻을 것이다] 등이 있는데, 
고갱도 토착원주민들을 상당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추정이 됩니다.


 



그나라의 문화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토착민과의 어울림이 상당히 중요 합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에스키모인을 알려면 , 그들과 같이 동거동락을 하면서 그들의 순수함을 
조롱하지말고, 마음을 열고 받아 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저도 역시 아프리카 토속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접해볼 기회가 없었기에 궁금한 점이 참 많습니다.
마사이족이 달리기를 잘한다던가, 그 부족 사람들이 에버랜드에 와서 공연을 하고
공연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운 사정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게 전부였답니다.




콜라병을 들고 영화에 출연한 부시맨이 아마도 머리에서 제일 기억에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말도 안되는 시점으로 출발을 하는데 , 비행기 조정사가 다마신 콜라병을 비행기 
밖으로 던지자 그 콜라병이 부시맨 머리에 맞고 떨어져 부시맨은 처음 보는 콜라병을 보고
하늘이 내려준 진귀한 보물로 여기고 늘 들고 다니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중에는 여러 시리즈물로 다양하게 나와 그 부시맨이 엄청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원주민들의 숨결이 그대로 묻어 있는 그리고, 그들의 영혼이 함께 하고 있을것 같은 저런 문화재를 
보면, 조금은 숭고해지는것 같더군요.




 

오늘의 요리, 김밥 입니다.
손쉽게 만들수 있는 김밥은 정말 한국인들에게는 
빼 놓을수 없는 간식이면서, 한끼 식사로도 
충분할 정도의 영양가 가득한 메뉴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은 다들 김밥 한번 만들어 보지 않으시렵니까!


표주박

황색인종중 가장 먼저 백인을 접한 나라가 바로 중국이라고 하네요.
중국인과 일본인의 영어표현은 Chinese와 Japanese 인데,
사람들을 칭할 때 끝에 ‘ese’ 로 끝나게 하는 것은 상당한 무시와 비하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것들 …떼거리들’ 정도의 뉘앙스. 다행히 우리는 Korean 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소개된 게 늦었던 덕이 아닌가 하는데요. 
일렀었다면 우리도 Korenese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백인들은 자기네가 처음 접한 동양인들을 이렇게 ‘니즈’라는 이름을 붙여 
깔보았다니 조금은 씁쓸 하네요.
                        지금 중국이나 일본의 국력이 막강 해 지면서, 지위 자체가 수직 상승을 한것 같더군요.
                                   우리 대한민국도 국력이 강해져야 해외교민들도 대우를 제대로 
                                                       받을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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