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문화 그러면 목욕문화가 떠오르고, 나라로는 역시 로마가
단연 으뜸이 아닌가 합니다.
목욕문화가 발달하면 , 나라가 쇠한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온천으로 유명한 일본이, 지진으로 불안불안 하긴 합니다.
오늘은 온천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자! 모두 온천가실 준비는 되셨나요?
야호~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이제 얼어붙은 강이 녹으면, 이 유람선도 관광객을 태우고
치나강을 유유히 흐르며, 알래스카의 멋진 풍경을 보여줄 것 입니다.
모든 대륙과 세계의 많은 국가에는 수많은 온천이있습니다.
온천으로 유명 국가는 중국 , 코스타리카 , 아이슬란드 ,
이란 , ,뉴질랜드 , , 페루 , , 미국 , 대만, 그리고 일본, 그리고,
여러나라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온천은 유명한 곳이 없는지 등재가 안되어 있네요.
.제일큰 온천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뉴질랜드에 있는 프라이팬 호수의 리프트밸리 화산의 온천 이랍니다.
저도 아직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호수 이름이 프라이팬...뜨아..
온천은 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하수로, 섭씨 20〜25도 이상의 온수를 말하며,
물리적, 화학적으로 보통의 물과는 성질이 다른 천연의 특수한 물인데,
세계 각지에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온천욕을 즐겨왔습니다.
각 나라별로 온천수로 지정하는것은 그나라의 법으로 정하는데, 한국 같은 경우에는
20도에서 25도 이상의 지하수를 온천수로 지정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 정도 온도를 온천 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많습니다.
삼국사기에서 온천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데, 그 어원은 좋지 않은 뜻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온천에 모이곤 했는데, 사실은 반란을 꾀하기 위해서 온천에서 병을 핑계로
다들 모여서 반란을 모의 했답니다.
물론, 모두 들켜서 사형을 당했습니다.
신성한 온천에 모여서 단합대회를 한거지요.
온천은 치료 외에도 휴식, 스포츠, 사교 등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는데,
온천에 한번 목욕을 한다고 병이 금세 호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장기간 숙식을 하며
온천 주변에 머물러야 되기 때문에, 따라서 왕과 귀족들이 온천에 머물며 치료와 휴식을 취하는 동안,
사냥 등의 스포츠 행사가 열리기도 했고 이를 통해 사교가 이루어졌던 것이지요.
온천을 가장 즐겨 찾는 이들은 왕이었는데, 기록상 가장 먼저 온천을 이용한 임금은
712년 4월 온천에 간 신라 성덕왕(신라 제33대 왕)이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영취사(靈鷲寺)’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 31대 신문왕 때인 683년에
재상 충원(忠元)이 장산국(萇山國:부산 동래구) 온천에서 목욕을 마치고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영취산 일대에서 기연(機緣)을 맺어 영취사를 짓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서 충원이 들린 온천은 동래 온천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한번 가보았는데 , 그렇게 큰 감동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백제 시대 탕정군(湯井郡)이 등장하는데,
이는 신라의 온수군(溫水郡)으로 현재의 온양지역을 의미하는데,
‘탕정’이란 말이 끓는 우물, 즉 온천을 의미하는 것으로 백제 시대에 이미
온양의 온천이 알려졌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현충사 부근의 노천탕도 생기고 ,여러 온천들이 추가로 생겨 났는데,
물을 사다가 끓여서 쓴다고 하네요.
여기 치나온천은 금을 캐다가 발견한 온천 입니다.
그러다보니, 수질 검사도 아주 까다롭게 하루에도 서너번씩 합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사실 입니다.
또한, 여기서 나는 지열을 이용해 여기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소각하는 소각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천수에서 나는 열을 이용한다는게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합니다.
유럽인들이나 백인들도 온천욕을 아주 좋아 합니다.
사계절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는 온천이 별로 흥미를 못 끌겠지만,
추운겨울이 있는 나라에서는 온천이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합니다.
물론, 온천이 없는 곳에서는 사우나를 많이 만들어서 이용을 합니다.
고려의 임금들은 온천에 자주 행차를 했었습니다.
문종을 비롯한 고려 임금들이 자주 다닌 온천은 황해도 평산군에 위치한 평주(平州) 온천이고,
가장 많이 온천에 다녀온 임금은 충렬왕인데, 1287년 그는 온천에 머물면서 박지량 장군에게
군사 1천을 동쪽 국경에 주둔시켜 여진을 방비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하고,
그곳에서 사냥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왕비인 원나라 공주와 함께 온천에 머물기도 했는데,
온천 여행은 언제나 많은 비용이 드는데, 1285년 왕이 공주, 세자와 함께 평주 온천에서
사냥을 했는데, 음식을 마련하는 비용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당시 온천욕이 낙이긴 했겠네요.
목종(998〜1009)은 문하시중 한언공(韓彦恭)이 병이 나자, 의원과 약물, 수레 등을 내려주며
온천에 가서 병 치료를 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는군요.
선종(1083〜1094)은 보다 적극적으로 “병든 부모께 온천치료를 시키고자 하는 관리에게는
온천의 거리에 따라 휴가제를 실시하라.”고 명을 내리기도 했으며, 임금만이 아니라,
신하들도 온천을 치료 행위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와우~ 그당시 온천 휴가라니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단어네요.
지금 회사 사장님들도 좀 배우시길 ^^*
시급한 도입이 절실 하네요.
고려 시대 기록에 등장하는 온천은 동래, 유성, 온양, 영산(부곡), 평해, 백천, 이천, 고성,
신주, 성주 온천 등이 있었답니다.
저중에서 제가 가본곳은 동래,유성,부곡(하와이),이천,온양등이네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황해도 평산의 평주 온천을 즐겨 찾았는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하들은 한양과 300리나 떨어진 평주 온천행을 자제할 것을 청했지만,
태조는 신하들이 자신의 병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는군요.
한번 나드리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동원 되었으며, 수발 드느라고 힘들었을지 가히
상상이 가네요.
당시 [세종실록지리지 ]에 언급된 온천의 수는 전국에 31개나 되는데,
수안보, 평산, 덕산, 온양, 유성, 동래, 마금산, 백천, 송화온천 등입니다.
그런데 경기도와 전라도 지역에는 온천이 없었답니다.
한양에서 가까운 곳에 온천이 없었기에, 온천에 가는 비용과 시간은 자연스레 많이 들었습니다.
경기 지역에서 온천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찾지 못하였으며,
조선의 임금들이 가장 많이 찾은 온천은 충청도 온양이었습니다.
온양 온천은 백제시대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더욱 유명해진 것은 조선시대 온양에
임금이 머무는 행궁(行宮-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에 임시로 머물던 별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와 전라도 지역은 평야 지역입니다.
곡창지대이다보니, 산세가 부드러워 지진이나 화산의 위험이 없었던 지역 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화산,지진의 영향으로 생긴 온천이 있을수가 없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닌가 합니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그리고 사도세자 등이 온양 행궁을 다녀왔는데,
이들은 온양 행궁에 평균 35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현대인들은 휴양을 위해 온천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치료가
우선이었다고 합니다.
왕이 목욕 하는건 영화에서 잘 못 봤습니다.
매일 수발을 드는 궁녀들이 수건으로 온몸을 닦는게 전부인것 같더군요.
그러니, 피부병이 발생할수밖에요.
임금님이 피부병을 많이 앓았다고 합니다.에이...지저분해라..
[동의보감]에 따르면 온천수는 힘줄과 뼈가 오므라든 경우, 특히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며,
온천을 방문한 사람들은 창종(瘡腫- 헐은 곳이 생겨 부은 것), 습양(濕瘍- 피부 짓무름),
종기(腫氣- 부스럼), 안질(眼疾), 풍질(風疾) 등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임금이 목욕을 할 때에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온천물에 부용향, 소목, 울금, 작설 등의
약재를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 친구는 팔에다가 글씨를 새겨넣었네요.
도대체 뭐라고 쓴건가요?
낙서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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